하와이 진주만 역사 박물관 견문기
-Japanese Ambition in the Attack of America (Pearl Harbor) and The Restoration of America-
나는 2011년 극우파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자행한 9/11 테러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의 맹방 미국이 위험에 처해 있다” 라는 위기 의식과 함께 미국행 비자를 신청하였다. 내 의식 속에 미국은 우리 나라에 복음과 사랑을 심어준 참으로 고마운 형제의 나라요, 어버이 같은 나라란 생각이 있었고 군 복무 시절 한/미 합동 정보부대(NSA/DSA)에 근무하면서 “미국은 정말 든든한 후원 국가” 라고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터라, 미국이 위기에 빠진 가운데 나와 내 가정은 적어도 미국의 위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 본인은 당시 풀러 신학교에서 가정사역 분야(미혼 청년들의 결혼 준비)로 박사 과정 논문을 쓰는 가운데 있었고, 이민 가정의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모습을 느끼면서, 이민 가정을 섬기고자 도미할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여러가지 여건이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던 터였지만, “미국이 공격을 받았다”(America was attacked!) 란 소식에, 감히 온 가족이 선교사(한국 CCC 파송) 로서 종교 비자를 신청하였고, 놀랍게도 비자를 허락 받아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치 아브라함을 불러 내신 것처럼,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인도하심의 결과라고 우리 온 가족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특히 재정적으로 아무런 보장이 없는 가운데서도 한국을 떠나기 직전, 갑자기 우리도 잘 알지 못하는 분으로부터 약 1만 불에 해당하는 헌금을 받게 하셔서 온 가족이 미국에 들어와 정착하는데 요긴하게 사용하게 하셨던 것이다. 나는 미국에 들어오는 첫 목적지를 9/11 테러로 무너진 만하탄의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정하고 뉴욕 공항에서 내린 후 곧바로 그곳 현장으로 달려갔다. 옅은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마치도 화장터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시체가 타는 냄새와 송장이 썩은 냄새가 내 온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주여! 악한 세력들이 더이상 승리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때 이후로 미국의 안정을 위한 기도는 나의 날마다의 기도제목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과 조국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한 기도는 빠지지 않는 나의 기도가 되었다.
지난 과거나 역사를 통해 깨닫는 개인이나 사회는 지혜로운 개인과 사회요, 과거와 역사를 통한 교훈을 받지 못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어리석고도 미련한 존재일 뿐이다.
많은 분들이 하와이를 방문하지만, 그곳 호놀룰루의 와이키키 해변을 기억할 지라도, 공항 부근의 진주만 역사 박물관을 기억하거나 찾는 경우는 드문 것같다. 본인도 하와이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지만, 최근에야 그곳 박물관을 찾아보고 새삼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며 일본의 야망과 만행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이었는지 새롭게 깨달을 수있었다.
1942년 12월 7일 성탄절을 앞두고 약간은 들떤 분위기 속에 있던 주일 아침, 대부분의 군인들은 (공군이나 해군 할 것없이) 극소수의 당번을 제외하고는 외출이나 휴가를 떠난 시간이었다. 당시 동남아를 점령하려던 야심을 가졌던 일본은 전 해군 함대(당시에 이미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4-5대를 갖춤)를 동원하고 항공 모함에는 수백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탑재한 채, 미국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정확히는 오하우) 섬을 공격하여 아리조나 전함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함정과 비행기들을 폭파시키고 비행장과 항만 시설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하루 아침에 수 천명의 해군, 해병, 공군 병사들이 바다에 수장되어 버렸다. 전혀 무방비 상태의 미국을 선전포고도 없이 야비하게 기습 공격하여 미국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거의 해적 수준의 야만적이고 야비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왜 일본은 저런 엄청난 전쟁을 계획하고 추진하였던가?
그 배후에는 결국 영적인 깊은 뿌리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두려운 가운데, 잦은 지진으로 일본 열도가 침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자신들을 돌보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 온갖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며, 자신들의 계략과 술수로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남아로 진출하여 생존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길은 침략 전쟁 뿐이라고 허탄한 꿈을 꾸고 대동아 전쟁을 계획하지 않았을까?
미국 대통령은 그 다음 날로, 국회 연설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사실상 전쟁 상태”에 들어갔음을 천명하고 2차 세계 대전에 집중 참여하게 된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전 국민이 일체 단결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해 미드웨이(Midway) 해전을 기점으로 일본의 기세를 꺾어 버리고 동남아시아 각국까지 일본에 짓밟힌 나라들과 열방들을 구출해 내었다. 1945년초,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맨하탄 프로젝트) 세례를 줌으로써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하기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우리 대한 민국도 독립을 하기에 이르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어처구니 없는 진주만 공격은, 우리 나라를 일본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당시 수많은 식민지 국가 로 있었던 동남아 여러 나라들(대만, 필리핀 등)이 미국의 승리로 말미암아 동일하게 자유와 독립을 얻게 된 것이다. 의미 없는 고난이 없다고 한 것처럼, 미국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많은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새로운 길, 생명과 소망을 얻게 된 셈이다. 그뿐 아니다. 유럽 쪽 모든 나라들은 영국을 포함하여 나치 독일의 거침 없는 침공에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때,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말미암아 유럽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결국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고 유럽 열강들을 독립시켜주는 천사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지난 세기와 금세기 초까지 거의 70년간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전 세계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최근 갖가지 법률과 행정처방이 건국이념인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난 바람에 여러 방면에서 전락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이 미국 땅은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로 쓰여왔음을 돌아보게 된다.
전쟁 기념 박물관을 벗어나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아~” 하는 탄성을 터뜨리게 되었다.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저너머 지평선 위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내 인생 굽이 굽이에 무지개는 마치 노아 할아버지 때, 은총의 표징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의 Sign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며,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며 자비와 긍휼로 너를 대하겠다.” 마침 한 신혼 부부 커플도 무지개를 보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고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미래를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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