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를 위한 결혼
얼마전 한국을 다녀오며 결혼적령기 청년들의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있고 또한 결혼하지 않는 추세에 대해 부모들은 물론 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을 느꼈습니다.
결혼을 앞둔 분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또는 “결혼은 꼭 해야 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묻곤 합니다. 사실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본받고 싶은 경우가 아닐 때, 이러한 의문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실제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는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과연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혼은 여성의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마취 없이 뽑아 내는 수술이다.”라고 Helen Rowland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단지 여성 뿐이겠습니까? 남성에게도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성숙함으로 이끌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동참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결혼이나 부부 관계는 신학적, 영적으로 중요한 단위가 아니었습니다. 글이나 가르침에서 나오는 영성은 기본적으로 독신자나 수도사의 것이었습니다. 교황 시리시우스(Siricius, A.D. 384-398)는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나 결혼한 성직자 모두에게 성적 관계를 금지하면서 독신생활을 성직자의 필수요건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종교개혁올 주도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캐더린(Katherine)과 결혼하면서 그러한 전통에 도전장올 냈습니다. 로랜드 바인튼(Roland Bainton)은 감동적인 루터 전기를 마무리하면서 가정과 종교개혁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루터의 영향력은 추종자들의 가정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종교개혁이 사실상 가장 깊숙이 영향을 끼친 유일한 삶의 터전은 바로 가정이었다. 경제는 자본주의로, 정치는 전제주의로 변했지만 가정은 루터가 그의 가정에서 이루어 놓은 사랑과 믿음 안에서의 생활양식을 따랐던 것이다” 그때부터 마틴과 캐서린은 연합의 본보기를 통해 성경적 신앙이 가정안에서 만들어질 때 가장 풍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교회와 세계 만방에 알린 셈입니다.
결혼을 통해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도전일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하루 24시간을 감시(?) 속에 있으니 ‘휴식’도 없을 것입니다. 배우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비디오를 빌릴 때도… 식욕, 탐욕, 열망등의 세속적인 모습을 배우자의 눈앞에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을 감수하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혼은 타락이 가장 잘 노출되며 우리의 존엄이 가장 훌륭하게 지탱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통한 인내라는 영적 훈련을 하게 됩니다. 훌륭한 결혼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이기심을 못박아야 합니다. 싸워야 하고 고백해야 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배우자에게 노출시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럼으로써 배우자도 내게 그 약점을 노출 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과 가정 생활을 통해 우리 자신의 취약한 부분들을 용납 받고 회복되며 보다 온전한 인격으로 성숙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결혼 생활은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서 마침내 아름다움과 신뢰와 상호협력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성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감정적인 만족이나 낭만을 느끼는 데서 결혼의 주된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명으로서의 결혼
결혼이 늦어지거나 서두르지 않는 청년들에게 이유를 묻는다면… “재정적 준비가 덜 되었다”, “직업에서의 전문성을 갖고 싶다”, “매여살기 싫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없을 것 같다” 등의 다양한 이유들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던 최초의 기록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 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독처하는 것이란 영어로 ‘isolate’“관계를 맺사람이란 한자(人)도 두 가지가 서로 의지하는 모습인데 사람들이 서로 의지해서 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가끔 예외적인 사람들(신부나 수녀, 승려 등)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하고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여러 가지 필요(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필요)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필요를 같은 동성에게서 채움을 받을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성적인 필요는 상대 이성을 통해서만 채움 받을 수 있기에 성인이 된 남녀들은 짝을 찾게 되고 또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음란 사이트, 외설 잡지 등 성적인 자극이 많은 시대에 결혼이라는 제도는 우리를 위한 안전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결혼이라는 울타리 없이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순결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한 채 동거나 성적인 타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 질 것입니다.
또한 인간 사회가 계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자녀들이 출산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인구 성장률이 감소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결혼과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럽의 프랑스 같은 경우 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자녀출산을 거부하는 바람에 진작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으므로 위협을 느끼다가 최근에는 아랍계 사람들의 이민을 통한 인구 유입으로 겨우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존 D. 어윈은 4000여 년 동안 존속하다 사라진 80종족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가 연구한 80종족 모두가, 국가의 멸망은 가정과 성의 타락과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케이스에서 결혼 곧 가정의 연합이 깨어진 후, 변질된 결혼이 가져오는 결과는 결국 가정과 국가를 비극으로 몰아가며 한 세대 안에 나라의 멸망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사회는 목적도 없고 좌절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합니다. 교회와 사업 그리고 사회의 발전을 이끌고 갈 지도력은 거의 없어집니다. 또 자녀들은 본받을 만한 모범적 가정이 없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꽤 성공할 지는 모르지만 사랑과 존경을 경험할 수 없으며, 여자들은 겉으로는 아름다울지라도 사랑과 이해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변질된 가정으로 인한 그 열매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결혼과 가정에 대한 청사진을 배워야 의미있는 삶을 꾸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결혼의 목적과 계획을 알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질적인 삶가운데 성령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할 때 부부는 거룩한 일치를 이루며 하나님과 서로에 대해 삶 전반을 통한 헌신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과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데 곧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기르는 가운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책임에 대해 아직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여 자발적인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무조항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법적인 의무 조항(?)으로 정해지는 날이 올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혼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분명한 결혼관과 가정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과연 결혼이나 가정은 무엇인가? 또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해 책을 읽거나 예비결혼학교에 참여해보도록 권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또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왜곡된 가운데 있는 결혼과 가정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마음 속에 가정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내려놓고 새로운 성경적 청사진을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원래 결혼이나 가정은 인간이 고안해낸 제도가 아닙니다. 선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아름다운 선물로 주신 것이 결혼이요 가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 아래 살아온 선배 그리스도인 가정을 방문해보고 또한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나눔으로써 그러한 삶의 실제를 경험해 보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저도 결혼하기 전에 선배 그리스도인 가정들을 방문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으로 소중한 경험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데이트를 할 준비를 하십시오. 데이트에는 그룹데이트(불특정 다수의 형제 자매가 만나는 만남)와 결혼을 전제로한 1:1 데이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CCC의 형제 자매들은 리트릿이나 순례전도, 단기 선교 등의 활동 등이 그룹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결혼을 전제로한 1;1의 만남을 갖기 전에 그룹 데이트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나는 누구이며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연구하고 준비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건강한 자아상을 갖는 것은 다른 무엇 보다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상 개선 프로그램(인격 개발 세미나, 내적 치유 세미나 성인 아이 치유세미나 등)을 통해 자아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유의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자아가 발달되어 오는데 20년 이상이 걸렸다는 것과 우리의 성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치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한 번 밖에 못사는 인생을 위해 나와 배우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나의 꿈은 무엇이며 배우자의 소원은 무엇인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학업을 마친 후에도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가 결혼할 준비가 무르익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현실은 금전적인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기에는 결혼 준비를 위한 자금을 모아 둘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계신다면 부모님들께서 상당 부분 신경을 쓰겠지만 부모님에게만 맡겨두고 무신경하게 지내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할 당사자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준비되었다면 결혼은 더 이상 늦출 필요가 없습니다. 재정의 부족 때문에 마냥 결혼을 미루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돈은 아무리 모아도 만족스러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설계요 또한 인간 세상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이자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 결혼은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엄숙한 사명임을 다시 한번 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결혼을 통해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도전일지 모른다. 거의 하루 24시간을 감시 속에 있으니 ‘휴식’도 없다. 아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예) 비디오를 빌릴 때도… 식욕, 탐욕, 열망을 아내 눈앞에 드러낸다. 세속적인 모습 –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 두려움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혼은 타락이 가장 잘 노출되며 우리의 존엄이 가장 훌륭하게 지탱되는 장소이다.(댄 알렌더, 트렘퍼 롱맨) 은혜 안에 성장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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